2004년 Sum 41은 War Child와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콩고민주공화국 부카부에 갔다가 교전에 갇혔다. 호텔에 고립된 이들을 Chuck Pelletier라는 UN 평화유지군이 데리고 빠져나왔고, 앨범 제목은 그 사람의 이름이다. 그 뒤에 나온 앨범이다.
솔직히 나는 들으면서 지쳤다. 바꾸자고 소리치다가 이내 안으로 무너지고, 자책하고, 힘을 잃는다. 그 오르내림이 앨범 내내 반복된다. 처음엔 그게 나를 지치게만 했다. 그런데 다 듣고 나니, 그 피로가 실수가 아니라 이 앨범이 의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그 무기력한 순환 속에 앉혀두려고 만든 앨범이었다.
총구
앨범은 처음부터 누군가를 겨눈다. 「No Reason」은 못 바꿀 이유가 어디 있냐고, 시간이 없다고 다그친다. 모르는 척 눈 감는 걸 죄 없다는 핑계로 삼지 말라고 한다. 이어지는 「We're All to Blame」에서 그 손가락은 바깥이 아니라 우리 쪽으로 돌아온다. 정치도 시스템도 아니고, 아무 대가 없이 다 가지려는 우리 자신을 겨눈다.
When we all fall down, who will take the blame?
여기까지는 아직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목소리다. 화가 나 있어도 그 화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안다.
잠식
그 확신은 오래 가지 않는다. 곡이 이어질수록 앨범은 점점 자기 안으로 파고든다. 「Slipping Away」에서 목소리는 물에 잠기듯 조용해지고, 「Pieces」에서는 완벽해지려던 안간힘마저 손에서 놓아 버린다. 바꿔야 하는 건 아는데 바꿀 힘이 자꾸 빠져나간다. 가라앉는다. 그 사이에서 화는 체념으로, 남을 향하던 다그침은 자기 비난으로 미끄러진다.
미끄러지면서 앨범은 자꾸 '너'를 부른다. 그런데 그 '너'가 한 사람이 아니다. 나약한 나였다가, 등 돌린 세상이었다가, 듣고 있는 나이기도 하다. 「There's No Solution」에 오면 내가 심판하던 그 '너'가 결국 내가 될까 봐 무섭다고 말한다.
Maybe I'd end up just like you
이 앨범에는 비난에서 빠져나갈 자리가 없다. 밖을 겨누던 총구가 어느새 나를 향한다. 처음의 화가 왜 자꾸 안으로 꺾이는지 알 것 같았다. 바꿔야 할 대상이 결국 나였다.
제자리걸음
그래서 앨범은 끝까지 해결책을 주지 않는다. 해답은 없다고 제목부터 못 박은 그 곡이 결국 앨범 전체의 결론이다. 처음의 '바꾸자'는 후반의 「88」에 와서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말로 원점에 돌아온다. 또 한 번 피해자를 자처하며 같은 자리를 도는 목소리다. 제목부터가 그렇다. 숫자 8을 옆으로 뉘면 무한대(∞)가 되고, 88은 그게 둘이다. 앨범이 다다른 곳은 끝이 아니라 끝없이 도는 원이다.
그런데 그 맴돎이 완전한 어둠으로 닫히지는 않는다. 바로 그 「88」이 언젠가 네가 다 가지길 바란다고 몇 번이나 되뇌고, 정규 트랙이 끝난 자리에 숨은 「Noots」는 끝내 놓지 못한 채 조용히 잦아든다.
So I keep waiting
끊어내지 못하고 도는 절망인데, 손은 놓지 않는다. 밝은 척하지 않으면서 끝내 바깥으로 손을 뻗는다. 죽음을 스치고 돌아온 밴드가 낼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소리였다고 생각한다. 나를 그렇게 지치게 한 순환이 오히려 미더웠던 것도 그래서다.
Running in Desperate Circles.
답이 아니라 상태의 이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