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후

28 YEARS LATER · 2025 · 대니 보일 · 알렉스 갈랜드

뼈 더미로 엮어 올린 동앗줄

「28년 후」(2025) 포스터
출연
조디 코머 · 애런 테일러존슨 · 랠프 파인즈
감독
대니 보일
2026.08.16

좀비 영화는 대개 사람을 즐겁게 하려고 좀비를 쓴다. 「월드워 Z」나 「부산행」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새벽의 황당한 저주」나 「좀비랜드」는 코믹하고 유쾌하다. 「28년 후」는 그런 재미를 노리지 않는다. 액션을 기대하면 밋밋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부담 없이 보고 나면, 끝에 사람 생각이 오래 남는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그 앞에서 사람이 뭘 하는지 가만히 들여다보는 영화다. 피와 살점이 튀어도 무섭기만 한 게 아니다. 애초에 어른 보라고 만든 이야기다.

무대는 홀리 아일랜드라는 작은 섬이다. 밀물이 들면 바다에 잠겨 뭍과 끊기고, 물이 빠지면 좁은 둑길이 드러나 그때만 걸어서 건널 수 있다. 감염이 덮친 뭍을 등지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하루 두 번만 열리는 이 길에 기대어 마을을 이뤘다.

하루 두 번 이어졌다 끊겼다 하는 그 길이, 보고 있으면 꼭 탯줄 같다. 섬은 사람을 품어 기르고, 때가 되면 둑길 너머로 내보낸다. 소년 스파이크가 아버지를 따라 처음으로 그 길을 건너 뭍으로 나선다. 품에서 나와 바깥으로 처음 발을 떼는 순간이다.

섬과 나란히 읽히는 이름이 하나 있다. 스파이크의 어머니 아이슬라(Isla)다. 스페인어로 이슬라(isla)는 섬을 뜻한다. 아픈 몸으로 섬에 머무는 어머니의 이름이 곧 섬이다. 그래서 섬을 볼 때마다 어머니가 겹쳐 보인다.

이렇게 갇힌 건 섬만이 아니다. 뭍으로 나간 스파이크 일행은 스웨덴에서 온 군인 에릭을 만난다. 에릭의 말로는 바깥세상이 멀쩡하다. 감염에 갇힌 건 영국 하나뿐이고, 바깥세상은 아무 일 없이 흘러왔다. 홀리 아일랜드가 뭍에서 떨어진 섬이라면, 그 나라 전체가 세계에서 떨어진 더 큰 섬이다.

첫 장면부터 이 고립이 깔려 있다. 사냥을 나서는 길 위로 옛 전쟁 영화의 장면과 낡은 행군의 시가 겹쳐 흐르고, 활과 화살을 든 섬의 사냥이 먼 옛날 전투의 영광에 얹힌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막힌 섬은, 대신 지난 시절을 자꾸 불러와 스스로에게 되뇐다.

경계

섬이 그어 놓은 가장 굵은 선은 사람과 감염자 사이에 있다. 그런데 그 선이 자꾸 흐려진다.

밤의 뭍을 특수한 장비로 들여다볼 때 화면이 온통 붉게 물든다. 그 붉은 화면 속에서 무리 지어 움직이는 감염자들이, 섬에서 불을 피우고 잔치를 벌이는 사람들과 이상하리만치 닮아 보인다. 감염자는 살기 위해 먹이를 좇는다. 섬의 잔치가 살아남기를 비는 몸짓인지 그저 취하려는 것인지는 쉽게 갈리지 않고, 오히려 흥에 겨워 몸을 흔드는 사람들 쪽이 더 섬뜩하게 다가온다.

또 있다. 스파이크가 처음 느린 감염자들을 잡을 때, 마지막에 남은 어린아이 같은 하나는 제 무리가 죽는 걸 보고 도망친다. 사냥감인 줄 알았는데, 그 모습이 꼭 한 가족 같다.

무리에는 우두머리도 있다. 삼손이라 불리는 알파는 다른 감염자보다 크고 사나워서 순전한 위협으로 보이는 순간도 분명 있다. 그것이 감염자의 본성이라면 굳이 곱게 꾸며 줄 일은 아니다. 다만 그는 무리를 이끄는 자리에 있다. 이끄는 자가 있고 따르는 무리가 있다. 사람이 오래 만들어 온 모습 그대로다.

경계가 가장 멀리까지 지워지는 곳은 한 출산 장면이다. 감염자 하나가 아이를 낳으려 하고 아이슬라가 곁에서 그 손을 잡는다. 감염된 몸과 병든 몸이 손을 맞잡고 함께 힘을 준다. 그 순간 감염자는 좀비가 아니라 어머니다.

그렇다고 감염자가 착한 건 아니다. 살아남으려 하고, 새끼를 낳고, 무리를 짓고, 제 편을 잃으면 달아난다. 그 본능이 사람과 똑같다는 것뿐이다. 뒤집으면, 붉은 화면 속에서 잔치를 벌이던 사람들 안에도 같은 본능이 흐른다.

순환

사람과 감염자의 선이 지워지면, 그 밑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더 오랜 물음이 드러난다. 이 둘은 굳이 떨어져 있지 않다.

뭍 깊은 곳에는 켈슨이라는 의사가 산다. 그는 감염병이 앗아간 죽은 이들의 뼈를 거두어 씻고, 그것을 쌓아 커다란 탑을 세워 왔다. 그는 이 탑을 두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말한다. 그리고 거기에 메멘토 아모리스(memento amoris), 사랑을 기억하라는 말을 나란히 붙인다.

아이슬라의 병은 암이었다. 켈슨은 이미 손쓸 수 없다는 걸 알아보고, 아이슬라를 스파이크의 눈이 닿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 고통 없이 보내 준다. 남은 것을 정갈히 거둔 뒤에는 어머니의 두개골을 스파이크에게 건네고, 소년은 그것을 제 손으로 탑의 꼭대기에 올린다.

뼈로 쌓은 탑도, 죽은 이를 기려 세운 그 자리도 기괴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된 사원처럼 고요하다. 죽음을 감추지 않고 한자리에 모아 두는 그 태도가, 여기선 차라리 예법처럼 보인다.

그 곁에서 아이 하나가 뭍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다. 영화의 끝에서 그 아이에게 이름이 붙는데,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기려 아이슬라라 짓는다. 죽음을 곧게 세워 두는 서양의 기억법 곁으로, 죽고 태어나기를 되풀이하는 윤회(samsara)가 겹쳐 온다. 누군가 스러진 자리에서 누군가 태어난다. 이걸 슬프게도 무섭게도 몰지 않고, 물이 들고 나듯 그냥 순환으로 둔다.

섬이 어머니인지 뭍이 어머니인지, 영화는 끝내 답을 안 준다. 죽은 것을 가리지 않고 거두어 품고 그 위에서 새 목숨을 틔우는 대지 자체가 이미 어머니(Mother Earth)다. 아이를 낳은 건 뭍이고, 사람을 기르는 건 섬이다. 순환 안에서는 그 경계를 굳이 나눌 이유가 없다.

성장

이 모든 걸 통과하며 자라는 건 결국 스파이크다. 처음엔 아버지 제이미가 들려준 이야기 안에서 산다. 첫 사냥에서 달리는 감염자를 활로 맞혔다는 무용담은 아버지의 입을 거치며 부풀려져 섬 사람들에게 퍼진다. 섬이 옛 전투의 영광을 불러오듯, 아버지도 아들을 그런 영웅담의 주인공으로 세우려 한다. 그러나 소년은 차츰 그것이 지어낸 이야기였음을 알아챈다. 어머니를 살릴지도 모를 의사를 아버지가 숨겨 온 것도, 아픈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기댄 것도 함께 알게 된다.

소년이 뭍으로 나선 것은 감염자를 죽이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정작 그가 배워 오는 것은 사람을 보내는 법이다. 어머니를 제 손으로 탑에 올리면서, 소년은 없애는 일과 떠나보내는 일이 다르다는 걸 몸으로 익힌다.

그리고 스파이크는 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뭍에서 구한 아이는 섬에 맡겨 자라게 하고, 자신은 둑길 너머 뭍에 남아 홀로 선다. 이번엔 소년이 스스로 탯줄을 끊고 나온다.


「28년 후」는 좀비를 앞세우지만 오래 들여다보는 건 사람이다. 누구도 온전히 선하거나 악하지 않은 자리에서, 죽음을 피하지 않고, 떠나는 걸 억지로 붙들지 않는다. 어머니의 죽음을 지나 한 아이가 자라는 대목에서 문득 「몬스터 콜」 같은 영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앉았다가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그런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