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reak · Big Time Timmy Jim · The Franchise · The Baby-Faced Assassin”

Tim Lincecum

팀 린스컴

샌프란시스코는 그를 The Freak이라 불렀다. 아홉 팀이 작다며 지나친 몸으로 그는 사이영상을 두 번 받았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그를 두고 합의한 한 가지는 '너무 작다'였다. 2006년 드래프트에서, 전미 최고의 아마추어 선수에게 주는 골든스파이크상을 막 받은 투수를 아홉 팀이 그냥 지나쳤다. 5피트 11인치 170파운드. 볼티모어 단장 짐 두켓은 당시의 판단을 이렇게 설명했다. "키가 작고, 단단한 몸도 아니고, 역학적으로 무너질 거라고 봤습니다. 팔과 팔꿈치와 어깨에 부담이 너무 크다고요." 열 번째로 그를 부른 것이 샌프란시스코였다. 2년 뒤 그는 사이영상을 안았고, 이듬해에 하나를 더 보탰다. 대학 동료들이 그를 The Freak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그 몸에서 그런 공이 나온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 투구 동작은 아버지가 설계한 것이다. 티모시 르로이 린스컴은 1984년 6월 15일 시애틀 근교 벨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크리스 린스컴은 보잉의 엔지니어였고, 대학에서 공을 던진 사람이었다. 그가 아들에게 가르친 동작의 전제는 몸집이었다. 발끝에서 손끝까지 몸의 모든 관절을 순서대로 쓰면, 작은 몸도 팔만으로는 낼 수 없는 힘을 낼 수 있다. 크리스는 티미가 다섯 살 때부터 뒷마당 마운드에서 두 아들과 이 동작을 만졌고, 네 살 때부터 아들의 연습과 경기를 촬영해 들여다봤다. 훗날 린스컴은 그 상속을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도 저도 큰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 효율이 문제죠. 제 몸에서 뽑아낼 수 있는 걸 최대한 뽑아내는 겁니다. 아버지가 그걸 배웠고 저는 그 수정판입니다. 아버지가 프로토타입이고, 제가 2.0이에요."

리버티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그의 키는 4피트 11인치, 몸무게는 85파운드였다. 같은 팀이던 션 웹스터는 그때를 이렇게 기억한다. "티미는 유니폼 속에서 헤엄치는 것 같았다." 졸업할 무렵 5피트 9인치 135파운드가 됐고, 그 몸에서 94마일이 나왔다. 마지막 학년에 그는 워싱턴주 올해의 선수였다. 시카고 컵스가 2003년 드래프트 48라운드 전체 1408번째로 그를 불렀지만 그는 워싱턴대학으로 갔다. 대학 코치들은 크리스 린스컴에게 아들의 투구 폼을 바꾸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했다. 2학년을 마치고 클리블랜드가 42라운드에 지명했을 때도 사인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은퇴시키려면 70만 달러보다는 많아야 한다고 버텼다. 대학 마지막 시즌에 125이닝 3분의 1을 던져 삼진 199개를 잡고 평균자책 1.94를 찍었고, 골든스파이크상은 그의 것이 됐다. 함께 최종 후보에 오른 이름은 앤드루 밀러, 데이비드 프라이스, 에번 롱고리아, 드루 스텁스였다. 샌프란시스코가 쥐여준 계약금은 202만 5000달러, 구단이 아마추어 선수에게 쓴 가장 큰 돈이었다. 그가 고른 등번호는 55번이었다.

통산
WLERAGGSCGSHOSVIPSOBBWHIP
110893.7427827010711682.01,7366691.293
전시대

주요 상

  • 올스타 선정×4
  • 사이영상×2

우승

  • 리그 페넌트×3
  • 월드시리즈×3

위업

  • 노히터×2

수훈

  • 베이브 루스상

타이틀

  • 탈삼진왕×3

시대의 상

  • 더 스포팅 뉴스 올해의 선수×2
  1. 200723세SFG
    DEBUT
    7–5 · ERA 4.00 · 150 K

    구장 경비가 그를 배트보이로 알고 붙잡았다. 2007년 5월 6일, 스물두 살의 마른 우완은 그렇게 걸어 들어가 필라델피아의 처음 세 타자 체이스 어틀리·팻 버렐·애런 로완드를 모두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4이닝 3분의 1을 던지고 5점을 내준 뒤 내려갔는데도 관중은 일어서서 그를 배웅했다. 감독 브루스 보치가 공이 전기 같다고 했다. 9월에 구단은 그를 마운드에서 내렸다. 마이너와 합쳐 177이닝, 데뷔 시즌에 그렇게 쌓을 이닝이 아니었다.

    데뷔 시즌의 AT&T파크 마운드. 등에 붙은 번호가 55번이다.
    데뷔 시즌의 AT&T파크 마운드. 등에 붙은 번호가 55번이다.
  2. 200824세SFG
    REIGN
    18–5 · ERA 2.62 · 265 K
    리그 1위탈삼진
    사이영상더 스포팅 뉴스 올해의 선수올스타 선정탈삼진왕

    7월 7일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에 그가 실렸다. 톰 버두치가 붙인 제목은 '프릭의 물리학'이었다. 첫 올스타에 뽑혔으나 경기 당일 독감 증세와 탈수로 뉴욕의 병원에 실려가 공은 던지지 못했다. 11월 11일 사이영상 투표에서 1위표 32장 가운데 23장이 그에게 왔다. 1967년 마이크 매코믹 이후 구단에서 그 상을 받은 두 번째 투수였고, 필리핀계 선수가 메이저리그의 주요 상을 받은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시즌이 끝나고 그는 프렌치불도그를 들여 Cy라는 이름을 붙였다.

    원정 유니폼을 입고 손에 든 공을 내려다보는 린스컴. 2008년 7월.
    원정 유니폼을 입고 손에 든 공을 내려다보는 린스컴. 2008년 7월.
    펫코파크에서 산디에이고를 상대로 다리를 들어올린 순간. 2008년 8월.
    펫코파크에서 산디에이고를 상대로 다리를 들어올린 순간. 2008년 8월.
  3. 200925세SFG
    REIGN
    15–7 · ERA 2.48 · 261 K
    리그 1위탈삼진
    사이영상더 스포팅 뉴스 올해의 선수올스타 선정탈삼진왕

    10월 30일 워싱턴주에서 과속으로 차를 세운 경관이 마리화나 3.3그램을 발견했다. 주법으로는 불법이었다. 11월에 소환장을 받고 벌금 530달러를 냈으며 리그의 징계는 없었다. 그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 달 19일, 사이영상이 두 번째로 그에게 갔다. 온전히 치른 첫 두 시즌을 모두 사이영상으로 채운 투수는 그전까지 없었고, 2년 연속 수상도 랜디 존슨의 네 해 이후로 끊겨 있었다. 이듬해 구장에는 LET TIMMY SMOKE라 적힌 종이와 셔츠가 나타났다.

    공을 놓은 직후. 아버지가 설계한 동작의 끝자리다.
    공을 놓은 직후. 아버지가 설계한 동작의 끝자리다.
    통산 500번째 삼진을 잡은 경기에서 희생번트를 대고 1루로 달렸다. 2009년 6월 2일 워싱턴.
    통산 500번째 삼진을 잡은 경기에서 희생번트를 대고 1루로 달렸다. 2009년 6월 2일 워싱턴.
  4. 201026세SFG
    MARQUEE
    16–10 · ERA 3.43 · 231 K
    리그 1위탈삼진
    베이브 루스상올스타 선정리그 페넌트월드시리즈탈삼진왕

    2월, 그는 사이영상 두 개를 들고 연봉 조정 심리에 들어갔다. 2년 2300만 달러로 합의한 금액은 로저 클레먼스가 2006년에 세운 조정 기록을 넘어섰다. 10월 7일 애틀랜타와의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는 2안타 완봉으로 삼진 14개를 잡고 1대 0으로 이겼다. 구단 포스트시즌 최다 탈삼진이었다. 11월 1일 알링턴의 월드시리즈 5차전은 8이닝 1실점으로 지켰고, 그 경기가 구단이 56년 동안 들지 못한 우승을 가져왔다. 퍼레이드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따로 불러 말했다. "5년 전 팀이 드래프트에 나왔을 때 아홉 팀이 그를 지나쳤습니다. 그렇게 마른 몸이 그렇게 격한 투구 동작을 견디고 멀쩡할 거라 생각한 사람이 없었죠. 이제 사이영상 두 개를 가진 그를 두고, 왜 프릭이라 불리는지 모두가 압니다."

    2010년 11월 1일 알링턴의 밤. 이 경기가 끝나자 구단의 56년이 끝났다.
    2010년 11월 1일 알링턴의 밤. 이 경기가 끝나자 구단의 56년이 끝났다.
    우승 퍼레이드 위의 린스컴. 2010년 11월 샌프란시스코.
    우승 퍼레이드 위의 린스컴. 2010년 11월 샌프란시스코.
  5. 201127세SFG
    MARQUEE
    13–14 · ERA 2.74 · 220 K
    올스타 선정

    타선이 그를 돕지 않았다. 그가 나선 경기에서 팀은 열 번 점수를 내지 못했고 스물한 번은 2점 이하를 냈다. 평균자책은 리그에서 네 번째로 낮았는데 승패는 13승 14패로 적혔다. 200탈삼진에 평균자책 2.75 미만을 찍고도 승률이 5할을 밑돈 투수는 근대 야구에 여섯 명뿐이다. 겨울에 구단이 5년 1억 달러를 내놓았고 그는 받지 않았다. 2년 4050만 달러에 서명하며 그가 한 말은 이랬다. "그런 압박을 스스로 짊어지지 않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6. 201228세SFG
    REGULAR
    10–15 · ERA 5.18 · 190 K
    리그 페넌트월드시리즈

    루키 시절 99마일을 찍던 속구가 80마일대 후반으로 내려앉았다. 슬라이더는 손에서 놓았고 체인지업은 날이 무뎌졌다. 올스타 휴식기의 성적은 3승 10패, 평균자책 6.42였다. 아버지 크리스는 아들을 못 박듯 몰아붙이는 팬과 기자들을 향해 공개적으로 말을 냈다. 시즌이 끝났을 때 그는 리그에서 가장 많이 진 투수였다. 가을야구에 선발은 넷이면 충분했으므로 구단은 그를 불펜에 앉혔고, 그는 13이닝을 구원으로 던져 평균자책 0.69에 삼진 17개를 남기고 1점만 내줬다. 디트로이트를 4연승으로 지운 월드시리즈에서는 4이닝 3분의 2를 무실점으로 막았다. 봄에 무너진 선발이 가을에는 팀에서 가장 믿을 만한 팔이 되어 있었다.

    두 번째 우승 퍼레이드. 선발에서 불펜으로 내려갔던 가을의 끝이었다.
    두 번째 우승 퍼레이드. 선발에서 불펜으로 내려갔던 가을의 끝이었다.
  7. 201329세SFG
    REGULAR
    10–14 · ERA 4.37 · 193 K
    노히터

    머리를 짧게 자르고 도수 없는 검은 뿔테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7월 13일 펫코파크에서 그는 커리어 첫 노히터를 던졌다. 그 구장에서 나온 첫 노히터이기도 했다. 산디에이고를 9대 0으로 눕히며 삼진 13개와 볼넷 4개를 기록하고 148구를 던졌다. 자신의 한 경기 최다 투구수였고 근대 노히터 최다 기록에 한 개 모자랐다. 보치는 그를 끝까지 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중간에 뺐으면 그해 남은 기간 내내 저한테 말을 안 걸었을 겁니다." 10월에 그는 자유계약 대신 2년 연장 계약을 택했다.

    Newsreel
    펫코파크에서 던진 첫 노히터. 148구째까지 그는 마운드에 있었다.
  8. 201430세SFG
    SHORT
    12–9 · ERA 4.74 · 134 K
    리그 페넌트월드시리즈노히터

    5월 28일 컵스전에서 6회까지 노히터를 이어가다 가운뎃손가락의 물집 때문에 내려왔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6월 25일, 그는 다시 산디에이고를 상대로 노히터를 던졌다. 이번에는 홈이었고 113구에 삼진 6개, 4대 0이었다. 두 시즌 연속으로 같은 팀을 상대로 노히터를 던진 투수는 그가 처음이었다. 7월 말부터는 여섯 경기에서 평균자책 9.49를 찍고 선발 자리를 유스메이로 페티트에게 내준 뒤 남은 시즌을 불펜에서 보냈다. 가을에 그는 25인 로스터에서 디비전시리즈와 챔피언십시리즈에 한 번도 쓰이지 않은 유일한 선수였다. 월드시리즈 2차전에 올라와 만난 다섯 타자를 모두 잡고 8회에 허리가 굳어 내려갔다. 그것이 그해 그의 마지막 공이었고, 반지는 세 개가 됐다.

    Newsreel
    이듬해, 같은 팀을 상대로 던진 두 번째 노히터.
  9. 201531세SFG
    SHORT
    7–4 · ERA 4.13 · 60 K

    겨우내 시애틀에서 아버지와 함께 공을 들여다봤다. 6월 27일 DJ 르메이휴의 타구가 그의 던지는 팔꿈치를 맞혔고, 그는 경기 도중 마운드를 떠났다. 그해 다시 빅리그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7월에 양쪽 고관절 모두에서 퇴행성 변화가 확인돼 코르티손 주사를 맞았고, 9월에는 관절내시경 수술로 시즌을 접었다. 자유계약 신분이 됐지만 자이언츠는 그를 다시 부르지 않았다.

  10. 201632세ANA
    CURTAIN
    2–6 · ERA 9.16 · 32 K

    5월에 그는 구단들을 불러 공개 훈련을 열었다. 에인절스가 1년 250만 달러로 그를 데려갔고, 트리플A 솔트레이크를 거쳐 6월 18일 오클랜드에서 데뷔전을 승리로 치렀다. 그해 그가 얻은 두 승 중 하나다. 8월 5일, 그가 자란 도시의 팀 시애틀을 상대로 3이닝 3분의 1 동안 9안타 6실점하고 패전을 안았다. 이튿날 구단은 그를 방출 대기 명단에 올렸다. 서른두 살이었다. 9월에 로스터가 늘었을 때도 에인절스는 그를 올리지 않았다. 그날 시애틀에서 던진 공이 그의 마지막 빅리그 투구였다.

    에인절스 유니폼으로 치른 마지막 빅리그 등판. 2016년 8월 5일.
    에인절스 유니폼으로 치른 마지막 빅리그 등판. 2016년 8월 5일.
작은 사내가 세상과 맞붙는 거였다. 누구나 그런 걸 좋아한다.
— 두에인 카이퍼, 자이언츠 중계 캐스터 · SABR BioProject — Tim Lincecum

2017년 그는 어디에서도 공을 던지지 않았다. 이듬해 2월 비공개 쇼케이스를 열었고, 텍사스 레인저스와 1년 계약을 맺은 것은 3월 7일이었다. 계약이 늦어진 이유는 형의 죽음이었다. 네 살 위의 션 린스컴이 서른일곱에 세상을 떠났고, 그는 장례를 치르러 시애틀에 가 있었다. 텍사스에서 그가 등에 붙인 번호는 44번, 형이 달았던 번호였다. 그의 텍사스는 마이너리그에서 끝났다. 손가락 물집으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고, 트리플A 라운드록에서 10경기를 던져 평균자책 5.68을 남긴 뒤 6월 5일 방출됐다.

2019년 9월, 브루스 보치의 감독 마지막 경기 기념식에 그가 나타났다. 관중은 오래 일어서 있었다. 보치는 "티미는 제 마음에 정말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야구 이후의 삶을 묻는 질문에 그가 한 답은 이랬다. "제일 어려웠던 건 야구가 끝난 뒤의 제가 누구인지 받아들이는 일이었고, 아직 다 받아들이지도 못했어요. 공식적으로 은퇴하지 않았습니다. 할지 안 할지도 모르겠고요. 그래서 그냥 길을 찾는 중입니다. 몇 년 전에 집안일을 좀 겪었는데, 그게 여러 가지를 다른 눈으로 보게 했어요."

2022년 6월 27일, 아내 크리스틴 콜먼이 서른여덟에 암으로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캘리포니아 벌링게임의 초등학교 교장이었다. 오래 함께였고 결혼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아이는 없었다. 구단은 그해 8월 소식을 알리며 "그녀는 자이언츠 가족의 사랑을 받았고, 그녀와 티미가 우리와 함께한 시절에 그녀를 알 수 있었던 이들은 그 다정하고 진솔한 마음에 닿았다"고 적었다.

같은 해 그의 이름이 명예의 전당 투표 용지에 처음 올랐다. 394장 가운데 그의 이름이 적힌 것은 9장이었다. 2.3 퍼센트였고, 이듬해 용지에 남으려면 5퍼센트가 필요했다. 한 번 오르고 내려왔다. 자이언츠는 그의 55번을 그 뒤로 다른 선수에게 주지 않았다.

이모저모
  • 등 뒤를 홈플레이트 쪽으로 살짝 틀고 글러브를 머리 위로 올리는 데서 동작이 시작됐다. 앞으로 내딛는 거리는 7피트에 가까웠다. 자기 키보다 먼 거리였고, 공을 놓는 순간 골반이 디딘 발 위를 넘어갔다.
  • 체인지업은 2007년에 손에 넣었다. 스플릿핑거로 쥐어 던지면 처음 30피트는 속구처럼 오다가 뚝 떨어지며 좌타자에게서 달아났다. 투 스트라이크에서 그가 가장 즐겨 쓴 공이다.
  • 속구는 루키 시즌에 99마일까지 찍혔다. 2008년 평균 94.1마일, 2009년 92.4마일로 내려왔고, 2014년에는 평균이 90마일 아래였다.
  • 타석에서 그 공이 어떻게 보였는지는 이언 스튜어트의 말이 가장 잘 설명한다. "코앞에 올 때까지 공이 아예 안 보인다. 순식간에 들어온다."
  • 2010년 8월 5일 터너필드에서 브레이브스의 오르간 연주자 매튜 카민스키는 린스컴이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퍼프 더 매직 드래곤」을 연주했다고 한다. 린스컴은 경기가 끝난 뒤에야 알았다.
  • 자이언츠 시절 그는 샌프란시스코 미션 디스트릭트에, 옛 실스 스타디움이 있던 자리에서 걸어갈 거리에 살았다. 오프시즌은 시애틀에서 보냈다.
  • 시애틀 시호크스 팬이다. 2010년 시즌 끝 무렵 홈경기에서 '12번째 선수' 깃발을 올렸다.
  • 2010년 스포츠센터 광고에서 그는 Big Time Timmy Jim과 The Franchise, The Freaky Franchise를 음성사서함 인사말로 쓰라는 제안을 차례로 물렸다. "아무도 날 그렇게 안 불러요."
  • 매트 케인은 2017년 플레이어스 트리뷴에 린스컴의 데뷔일을 두고 "자이언츠 왕조가 시작된 정확히 그날"이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