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mbino · The Sultan of Swat”

Babe Ruth

베이브 루스

공을 던지던 손으로 야구의 무게중심을 홈런 쪽으로 끌어당겨 버린 밤비노.

볼티모어 뒷골목을 쏘다니던 일곱 살 아이가 '구제 불능' 판정을 받고 소년원으로 보내졌다. 서른세 해 뒤, 그 아이가 남긴 숫자는 통산 714홈런에 장타율 .690, OPS 1.164였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마운드 위의 또 다른 전설이 통째로 하나 들어 있었다.

루스가 태어난 곳은 볼티모어의 노동자 동네 피그타운이었다. 조지 허먼 루스 주니어는 1895년 2월 6일, 독일계 이민자 집안의 여덟 아이 가운데 하나로 그곳에서 태어났고, 살아남은 건 그와 여동생 메이미뿐이었다. 술집을 하던 아버지 곁에서 거리를 쏘다니던 아이가 보내진 곳이 세인트메리 소년원이었다. 그는 이후 열두 해 남짓을 부모 대신 학교의 손에서 자랐다. 그를 붙든 사람은 규율감독이던 마티아스 수사였다. 글과 옳고 그름을 가르친 그 수사가 어느 날 운동장에서 배트로 공을 때리는 모습을 보고, 루스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그가 공을 치는 걸 본 첫날, 나는 타자로 태어난 것 같았다." 재봉을 배우고 목공에 능했던 이 소년은 프로에 가서도 제 유니폼 깃을 손수 고쳐 달곤 했다. 열여덟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잭 던과 계약하자 사람들은 그를 '던의 갓난애(Dunn's babe)'라 불렀고, 그렇게 '베이브'가 평생의 이름이 되었다.

통산
타격
GABRH2B3BHRRBISBBBSOAVGOBPSLGOPS
2,5038,3982,1742,8735061367142,2171232,0621,330.342.474.6901.164
투구
WLERAGGSCGSHOSVIPSOBBWHIP
94462.281631481071741221.14884411.159
전시대

레거시

  • 명예의 전당

주요 상

  • 올스타 선정×2
  • MVP

우승

  • 리그 페넌트×10
  • 월드시리즈×7

타이틀

  • 홈런왕×12
  • 출루율왕×10
  • 득점왕×8
  • 타점왕×6
  • 평균자책점왕
  • 타격왕

시즌 클럽

  • 150타점 시즌×6
  • 50홈런 시즌×4
  • 200안타 시즌×3
  • 20승 시즌×2

시대의 상

  • 베이스볼 매거진 올스타×14
  • 더 스포팅 뉴스 올스타×6

마일스톤

  • 700HR
  • 2500H
  • 2000RBI
  • 2000R
  • 5002B
  • 1003B
  • 5000TB
  • 2000BB
  1. 191419세BOS
    DEBUT
    .200 · 0 HR · 2 RBI · OPS .5002–1 · ERA 3.91 · 3 K

    열아홉의 신인이 빅리그에서 던진 건 그해 네 경기뿐이었다. 레드삭스 고참들은 이 건방진 신인을 '빅 베이번'이라 불렀다. 정식 타자도 아닌 투수가 타격 연습에 끼겠다고 나서자 그의 배트를 톱으로 잘라 놨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시즌이 끝나고 그는 헬렌 우드퍼드와 결혼했다. 세인트메리의 가석방 신분이 아직 풀리지 않은 채였다.

  2. 191520세BOS
    SHORT
    .315 · 4 HR · 21 RBI · OPS .95218–8 · ERA 2.44 · 112 K
    리그 페넌트월드시리즈

    빅리그 두 번째 해에 그는 18승 8패, 평균자책 2.44의 어엿한 선발로 자리 잡았다. 방망이로도 홈런 네 개를 보탰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를 왼팔로만 바라봤다. 그해 레드삭스는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레드삭스의 젊은 좌완, 1915년
    레드삭스의 젊은 좌완, 1915년
  3. 191621세BOS
    MARQUEE
    .272 · 3 HR · 15 RBI · OPS .74123–12 · ERA 1.75 · 170 K
    리그 1위평균자책
    베이스볼 매거진 올스타리그 페넌트월드시리즈평균자책점왕20승 시즌

    스물한 살의 루스는 리그를 짓누르는 왼팔이었다. 23승 12패를 거두는 동안 평균자책은 1.75까지 내려갔고, 완봉만 아홉 번을 그려냈다. 그해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는 혼자 14이닝을 끝까지 던져 브루클린을 2-1로 눌렀다.

    레드삭스 시절 마운드 위의 루스, 1914~19년
    레드삭스 시절 마운드 위의 루스, 1914~19년
  4. 191722세BOS
    SHORT
    .325 · 2 HR · 12 RBI · OPS .85724–13 · ERA 2.01 · 128 K
    20승 시즌

    마운드 위의 그는 여전히 리그 최고였다. 24승 13패에 평균자책 2.01. 다만 다혈질도 그대로여서, 워싱턴 원정에서는 볼 판정에 항의하다 심판을 때려 퇴장과 출장정지를 당했다. 뒤를 이어 올라온 어니 쇼어가 상대한 스물여섯 타자를 모두 잡아내며 경기를 끝냈다. 오래도록 퍼펙트게임으로 불리다가, 훗날 두 투수의 합작 노히터로 다시 분류된 경기다.

  5. 191823세BOS
    MARQUEE
    .300 · 11 HR · 66 RBI · OPS .96613–7 · ERA 2.22 · 40 K
    리그 1위홈런
    베이스볼 매거진 올스타리그 페넌트월드시리즈홈런왕

    감독 에드 배로가 그를 조금씩 타석에 세우기 시작했다. 관중이 그의 방망이를 보러 몰린다는 이유였다.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그해 루스는 홈런 열한 개로 리그 공동 선두에 오르면서도 13승 7패, 평균자책 2.22를 던졌다. 투수와 타자, 두 벌의 유니폼을 한꺼번에 입은 셈이었다. 레드삭스는 또 한 번 월드시리즈를 제패했고, 그는 1차전에서 1-0 완봉을 보탰다. 그 경기로 월드시리즈 무실점 이닝은 29이닝을 넘겼다. 마흔 해 가까이 아무도 손대지 못한 기록이었고, 훗날 그는 자기 방망이가 남긴 어떤 성적보다 이 투구 기록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6. 191924세BOS
    REIGN
    .322 · 29 HR · 114 RBI · OPS 1.1139–5 · ERA 2.97 · 30 K
    리그 1위홈런타점득점OBP
    베이스볼 매거진 올스타홈런왕타점왕득점왕출루율왕

    배로는 마침내 그를 타석에 붙박았다. 130경기 가운데 마운드에 오른 건 열일곱 번뿐. 대신 그는 홈런 스물아홉 개를 때려 1884년 네드 윌리엄슨의 기록을 깨고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새로 썼다. 홈런·타점·득점에서 모두 리그 1위였다. 야구가 다른 경기가 되려 하고 있었다.

  7. 192025세NYY
    REIGN
    .376 · 54 HR · 137 RBI · OPS 1.3821–0 · ERA 4.50 · 0 K
    리그 1위홈런타점득점OBP
    베이스볼 매거진 올스타홈런왕타점왕득점왕출루율왕50홈런 시즌

    레드삭스 구단주 해리 프레이지가 루스의 계약을 뉴욕 양키스에 팔아넘겼다. 훗날 '밤비노의 저주'라 불릴 거래였다. 그 뒤로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은 오래도록 끊긴다. 양키스에서의 첫해, 루스는 홈런 54개를 날렸다. 한 팀을 빼면, 아메리칸리그의 어느 팀이 팀 전체로 친 것보다 많았다. 타율 .376에 득점 158, 타점 137을 쌓아 홈런·타점·득점을 싹쓸이했다.

    양키스 첫 시즌의 타석. 뒤에서 포수가 공을 받는다, 1920년
    양키스 첫 시즌의 타석. 뒤에서 포수가 공을 받는다, 1920년
  8. 192126세NYY
    REIGN
    .378 · 59 HR · 171 RBI · OPS 1.3582–0 · ERA 9.00 · 2 K
    리그 1위홈런타점득점OBP
    베이스볼 매거진 올스타리그 페넌트홈런왕타점왕득점왕출루율왕50홈런 시즌200안타 시즌150타점 시즌

    이듬해 그는 자신의 기록을 또 갈아치웠다. 세 해 연속 한 시즌 최다 홈런 경신, 이번엔 쉰아홉 개였다. 그해 7월에는 통산 139호를 넘기며 로저 코너를 제치고 빅리그 통산 홈런 1위에 올랐다. 타율 .378을 치는 동안 득점 177과 타점 171을 함께 쌓아 올렸고, 스물여섯의 나이에 그는 이미 리그를 혼자 짊어지다시피 했다.

    한 시즌 59홈런을 친 1921년의 루스
    한 시즌 59홈런을 친 1921년의 루스
  9. 192227세NYY
    REGULAR
    .315 · 35 HR · 99 RBI · OPS 1.106
    리그 페넌트

    1922년은 절반의 해였다. 그해 봄 그는 연봉 52,000달러의 장기 계약에 서명했다. 당시 최고 대우의 갑절이 넘는 액수였다. 그러나 시즌엔 사고가 잦았다. 심판에게 흙을 뿌리고 관중석으로 뛰어드는 소동 끝에 퇴장당하기도 했다. 110경기 35홈런에 그친, 그다운 해는 아니었다.

  10. 192328세NYY
    REIGN
    .393 · 41 HR · 131 RBI · OPS 1.309
    리그 1위홈런타점득점OBP
    베이스볼 매거진 올스타MVP리그 페넌트월드시리즈홈런왕타점왕득점왕출루율왕200안타 시즌

    양키 스타디움이 문을 열었고, 루스는 그 새 구장의 첫 홈런을 쳤다. 사람들은 그곳을 '루스가 지은 집'이라 불렀다. 커리어 최고인 타율 .393에 홈런 41개, 그리고 리그 MVP. 홈런·타점·득점을 다시 휩쓴 끝에 양키스는 마침내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다.

    양키 스타디움 개장일, 첫 홈런을 치고 홈을 밟다, 1923년 4월 18일
    양키 스타디움 개장일, 첫 홈런을 치고 홈을 밟다, 1923년 4월 18일
  11. 192429세NYY
    REIGN
    .378 · 46 HR · 121 RBI · OPS 1.252
    리그 1위홈런득점타율OBP
    베이스볼 매거진 올스타홈런왕득점왕타격왕출루율왕200안타 시즌

    이제 남은 정상은 타격왕 하나였다. 그해 타율 .378로 차점자를 스무 점 가까이 따돌리며 그마저 손에 넣었다. 홈런·득점·타율, 이번엔 세 방향에서 리그를 눌렀다.

  12. 192530세NYY
    REGULAR
    .290 · 25 HR · 66 RBI · OPS .936
    300HR

    1925년은 추락이었다. 눈에 띄게 불어난 몸으로 봄 캠프에 나타난 그는 '전 세계가 들은 복통'으로 쓰러졌고, 양키스 시절 최악인 98경기 타율 .290 홈런 25개에 그쳤다. 방탕이 청구서를 내민 해였다. 그 추락의 와중에 통산 300호 홈런이 조용히 지나갔다.

  13. 192631세NYY
    REIGN
    .372 · 47 HR · 150 RBI · OPS 1.253
    리그 1위홈런타점득점OBP
    베이스볼 매거진 올스타더 스포팅 뉴스 올스타리그 페넌트홈런왕타점왕득점왕출루율왕150타점 시즌1000BB

    겨우내 트레이너의 체육관에 틀어박혀 몸을 다시 만든 그가 돌아왔다. 홈런 47개 150타점으로 부활했고, 월드시리즈 한 경기에서는 홈런 세 방을 쏘아 올렸다. 월드시리즈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14. 192732세NYY
    REIGN
    .356 · 60 HR · 164 RBI · OPS 1.258
    리그 1위홈런득점OBP
    베이스볼 매거진 올스타더 스포팅 뉴스 올스타리그 페넌트월드시리즈홈런왕득점왕출루율왕50홈런 시즌150타점 시즌400HR

    그리고 1927년, 그 숫자가 왔다. 홈런 60개였다. '살인 타선' 양키스가 110승 44패로 2위를 19경기 차로 따돌린 해였다. 통산 400홈런을 넘겼고, 양키스는 월드시리즈에서 파이리츠를 스트레이트로 이겼다.

    웨스트포인트를 찾은 루스와 루 게릭, 60홈런의 해 1927년
    웨스트포인트를 찾은 루스와 루 게릭, 60홈런의 해 1927년
  15. 192833세NYY
    REIGN
    .323 · 54 HR · 142 RBI · OPS 1.172
    리그 1위홈런타점득점
    베이스볼 매거진 올스타더 스포팅 뉴스 올스타리그 페넌트월드시리즈홈런왕타점왕득점왕50홈런 시즌1003B

    홈런 54개를 다시 때려낸 그는 장타율 1위(.709)에 올랐다. 양키스는 카디널스에게 한 경기도 내주지 않았고, 루스는 그 시리즈에서 타율 .625를 몰아쳤다.

  16. 192934세NYY
    MARQUEE
    .345 · 46 HR · 154 RBI · OPS 1.127
    리그 1위홈런
    베이스볼 매거진 올스타더 스포팅 뉴스 올스타홈런왕150타점 시즌500HR2000H1500RBI1500R

    1929년은 슬픔과 이정표가 뒤엉킨 해다. 그해 초, 별거 중이던 첫 아내 헬렌이 화재로 세상을 떠났고, 얼마 뒤 그는 클레어 호지슨과 재혼했다. 같은 봄 양키스가 처음으로 유니폼에 등번호를 새겼을 때 그는 3번을 달았다. 그리고 그해 클리블랜드에서 통산 500홈런을 넘어섰다.

  17. 193035세NYY
    REIGN
    .359 · 49 HR · 153 RBI · OPS 1.2251–0 · ERA 3.00 · 3 K
    리그 1위홈런OBP
    베이스볼 매거진 올스타더 스포팅 뉴스 올스타홈런왕출루율왕150타점 시즌1500BB

    대공황의 초입, 루스는 100,000달러를 요구했고 두 해에 걸쳐 해마다 80,000달러를 받기로 합의했다. 그때 야구계에서 가장 높은 연봉이었다. 그해에도 그는 홈런 49개를 날렸고, 통산 볼넷 1500개를 넘겼다.

  18. 193136세NYY
    REIGN
    .373 · 46 HR · 163 RBI · OPS 1.195
    리그 1위홈런OBP
    베이스볼 매거진 올스타더 스포팅 뉴스 올스타홈런왕출루율왕150타점 시즌600HR

    서른여섯에도 그는 홈런 46개를 쳤다. 통산 600홈런을 넘기며 여전히 리그 홈런왕 자리를 지켰다.

  19. 193237세NYY
    MARQUEE
    .341 · 41 HR · 137 RBI · OPS 1.150
    리그 1위OBP
    베이스볼 매거진 올스타리그 페넌트월드시리즈출루율왕2500H2000RBI5000TB

    1932년, 야구에서 가장 오래 회자되는 장면이 나온다. 월드시리즈 시카고 원정, 루스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킨 뒤 그 방향으로 홈런을 쳤다는 이야기다. 진위는 지금도 논쟁거리다. 그해 그는 홈런 41개를 보태며 통산 안타 2500개를 넘어섰다.

    Newsreel
    1932년 월드시리즈, 그 유명한 '예고 홈런'
  20. 193338세NYY
    MARQUEE
    .301 · 34 HR · 103 RBI · OPS 1.0241–0 · ERA 5.00 · 0 K
    올스타 선정2000R

    서른여덟의 루스는 최초의 올스타전에 나서 그 경기 첫 홈런을 쳤다. 시즌 막바지엔 오랜만에 마운드에 올라 완투승을 거뒀는데, 그것이 선수 루스의 마지막 투구였다.

    1933년의 루스. 첫 올스타전이 열린 해다
    1933년의 루스. 첫 올스타전이 열린 해다
  21. 193439세NYY
    MARQUEE
    .288 · 22 HR · 84 RBI · OPS .985
    올스타 선정700HR2000BB5002B

    연봉은 17,000달러가 깎여 35,000달러가 됐다. 삭감을 당하고도 야구 최고 대우는 그대로였다. 서른아홉의 그는 그해 통산 700홈런을 넘겼고, 마지막 양키스 시즌 내내 원정마다 팬들의 작별 인사를 받았다. 그해 겨울 일본 순회 경기를 계기로 출생 기록이 확인됐다. 그때까지 그가 알고 있던 것보다 한 살 어렸다.

    시범경기에서 타격하는 루스, 1934년 4월
    시범경기에서 타격하는 루스, 1934년 4월
  22. 193540세ATL
    CURTAIN
    .181 · 6 HR · 12 RBI · OPS .790

    1935년, 양키스 구단주는 그를 보스턴 브레이브스로 보냈다. 마흔의 몸은 더는 따라주지 않았다. 타율 .181에 홈런은 여섯 개였다. 그러나 피츠버그에서 마지막 불꽃이 한 번 터졌다. 한 경기 홈런 세 방에 여섯 타점. 며칠 뒤 그는 방망이를 내려놓았고, 야구는 다시 예전의 야구로 돌아가지 않았다.

신문에 다 실렸잖아, 안 그런가?
— 베이브 루스, '예고 홈런'을 두고 · Wikipedia — Babe Ruth

야구가 그에게 끝내 내주지 않은 자리가 하나 있었다. 감독직이었다. 현역 시절의 방탕한 평판 탓에 그는 몇 번이고 지휘봉에서 밀려났고, 더그아웃의 우두머리 자리만은 끝내 그의 것이 되지 못했다.

1936년 명예의 전당 초대 투표에서 그는 95.1퍼센트의 표를 얻어 헌액자 다섯 명에 이름을 올렸다. 1946년 인후암 진단을 받은 그는 빠르게 야위어 갔다. 이듬해 '베이브 루스의 날' 양키 스타디움을 메운 관중은 쪼그라든 그의 모습에 말을 잃었고, 1948년 6월 그가 마지막으로 스타디움을 찾은 날 그의 등번호 3번은 영구 결번이 되었다. 두 달 뒤인 8월 16일, 쉰셋의 나이로 그는 눈을 감았다. 이틀에 걸쳐 1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그의 관 앞을 지나갔다. 그 무렵 이미 그의 이름 자체가 형용사가 되어 있었다. 터무니없이 거대한 것을 두고 사람들은 'Ruthian'이라 불렀다.

이모저모
  • 먹성과 술로 유명했다. 동료 웨이트 호이트는 그의 끝없는 과식과 과음을 지켜보며 "어떻게 저렇게 마시고도 취하지 않을까" 궁금해했다고 한다.
  • 세인트메리에서 자란 그는 평생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현역 내내 고아원과 학교와 병원을 찾았고, 대개 알리지 않았다.
  • 레드삭스 시절엔 서드베리의 자기 농장으로 고아들을 버스째 불러 소풍을 열고, 아이마다 글러브와 사인볼을 쥐여 줬다. 펜웨이의 토요일 아침이면 어린 땅콩 장수들을 도와 봉지를 채우고 팁을 두둑이 얹었다.
  • 1926년 병상의 소년 조니 실베스터를 찾은 일은 그의 가장 유명한 선행으로 남았다. 다만 그 방문이 소년의 목숨을 살렸다는 식의 살은 대부분 언론이 부풀린 전설에 가깝다.
  • 1925년 무렵 몸무게가 260파운드에 육박했다. 큰 몸통에 가느다란 손목과 다리를 두고 당대 기자들은 "피아노에 이쑤시개를 붙여 놓은 것 같다"고 적었다.
  • 신문들은 그를 부르는 별명을 날마다 새로 지어냈다. '강타의 거인', '강타의 마법사', '방망이의 대군주' 같은 말이 쏟아졌고, 동료들은 조지가 뭉개진 '지지(Jidge)'라 불렀다. 뉴욕 데일리 뉴스는 기자 마셜 헌트를 붙여 1년 내내 그만 쫓게 했다.
갤러리
Newsreel
밤비노의 커리어를 되돌아보는 하이라이트
Newsreel
양키스가 모은 베이브 루스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