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비긴즈」에는 어린 브루스가 우물에 떨어지는 장면이 있다. 그를 끌어올린 아버지는 「우리는 왜 넘어질까, 브루스.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란다 (Why do we fall, Bruce? So we can learn to pick ourselves up.)」라고 말한다. 트릴로지는 그 한 문장을 세 편에 걸쳐 완성한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그 문장의 앞쪽 절반, 넘어지는 쪽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나서야 뒤쪽 절반에 닿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무엇보다 브루스 웨인이 가장 깊이 추락한 후, 다시 올라가는 이야기이다.
추락
브루스가 이렇게까지 무너지는 이유는 상대가 강해서가 아니다. 그에게 지킬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배트맨은 어둠이 있어야 그림자로 존재할 수 있는데, 하비 덴트라는 상징이 거짓으로 세운 것이라 해도 8년 동안 고담을 떠받치는 사이 그 어둠이 걷혔다.
지켜야 할 도시가 저 혼자 서 있는 동안, 배트맨은 쓸모를 잃고 저택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베인은 첫 대결에서 그 약함을 정확히 짚는다. 「평화가 네 힘을 앗아갔고, 승리가 너를 패배시켰다 (Peace has cost you your strength. Victory has defeated you.)」
셀리나와 베인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한쪽은 지우고 싶은 과거를, 다른 한쪽은 끝내야 할 목적을 지고 있고, 걸린 것이 있는 사람은 물러설 데가 없어 강해진다. 그를 무너뜨린 것은 베인이 아니라, 더 이상 걸 것이 남지 않은 자기 자신이다. 알프레드가 떠나고, 지문을 도둑맞아 파산하고, 구덩이에 갇히는 일도 그를 떨어뜨린 원인이 아니라, 빈자리에 남아 있던 것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간 결과다.
점령
브루스가 갇혀 있는 동안 베인은 고담을 접수하는데, 그의 진짜 무기는 폭탄이 아니라 폭로다. 고든이 감춰 온 하비 덴트의 진실을 군중 앞에 읽어 내리는 순간, 거짓 위에 쌓아 올렸던 평화가 그 거짓의 무게로 주저앉는다.
그다음 벌어지는 일은 혁명의 얼굴을 하고 있다. 부자를 저택에서 끌어내리고, 감옥을 열고, 인민재판을 세워 죽음 아니면 추방을 선고하는 그림은 『두 도시 이야기』의 공포정치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다만 이 혁명은 처음부터 가짜다. 질서를 뒤집었을 뿐 무엇도 더 정의로워지지 않고, 무엇보다 이 봉기를 설계한 것은 시민이 아니라 탈리아 알 굴이다. 썩은 고담을 태워 없애려던 비긴즈의 라스가 딸을 통해 돌아온 셈이다. 그러니 이 봉기가 처음부터 노린 것은 도시를 시민에게 돌려주는 일이 아니라, 통째로 없애는 일이다.
폭탄은 즉시 터지지 않고 서서히 붕괴하도록 맞춰져, 도시에 언젠가는 끝난다는 희망을 쥐여 준 채 시한을 흘려보낸다. 닿을 수 없는 빛을 매일 올려다보게 하던 구덩이가, 도시 하나만 한 크기로 커진 것이다.
밧줄
도시가 그렇게 통째로 구덩이에 빠져 있는 동안, 브루스는 진짜 구덩이 밑바닥에 있다. 비긴즈에서 그는 두려움을 이겨서 강해졌지만, 라이즈에서는 정반대로 두려워해야 오를 수 있다. 눈먼 죄수가 그에게 말한다. 「너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그게 널 강하게 만든다고 여기지만, 실은 약하게 만들지 (You do not fear death. You think this makes you strong. It makes you weak.)」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한계 너머까지 자신을 밀어붙일 이유가 없다.
그를 다시 뛰게 만든 두려움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도시를 위한 것이다. 「나는 죽음이 두렵다. 이 안에서 죽는 게, 내 도시가 불타는데 구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게 두렵다 (I do fear death. I fear dying in here… while my city burns.)」 그를 오르게 한 것은, 잃을 것이 다시 생겼다는 감각이다. 추락의 자리에서 그를 약하게 만든 바로 그것, 지킬 것이 있느냐 없느냐가 이번에는 그를 일으킨다.
밧줄은 그 사이에 놓인 물건이다. 우물에서 어린 그를 건진 것이 아버지의 손이었다면, 구덩이에서 밧줄은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는 보장이다. 그 보장이 남아 있는 한 도약에 목숨이 걸리지 않고, 목숨이 걸리지 않으면 두려움도 없다. 밧줄을 풀고 뛴다는 건 다시 죽을 수 있는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는 끝내 밧줄 없이 벽을 오른다. 뛰어오르는 순간 벽에서 박쥐 떼가 쏟아지는데, 어린 그를 우물에서 덮쳤던 그 박쥐가 이번엔 그와 함께 위로 솟는다. 밖으로 나온 그는 밧줄을 구덩이 안으로 도로 내려 주고 고담을 향해 걸어간다. 자신은 밧줄 없이 올랐으면서, 뒤에 남은 이들에게는 밧줄을 남긴다. 아버지 웨인이 어린 그에게 그랬던 것처럼.
해방
돌아온 배트맨이 다리 위에 거대한 불타는 박쥐를 새겨 넣는다. 그 불붙은 표식 하나가 갇혔다 풀려난 경찰과 시민에게 다시 설 이유를 준다. 그들을 베인의 무리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주먹이 아니라, 그 상징이 되살린 희망이다.
마지막 순간에 판을 뒤집는 것은 새 악당이 아니라, 처음 그 자리로 되돌아온 이야기다. 미란다 테이트가 배트맨을 찌르며 탈리아임을 드러낼 때, 트릴로지는 「배트맨 비긴즈」의 라스에게로 되돌아가 순환한다. 배신하고 달아났던 셀리나가 배트포드를 몰고 돌아와 베인을 끝내는 것도, 어긋났던 이야기가 제자리를 찾는 같은 움직임이다.
그렇게 순환하며 영화가 마지막으로 증명하는 것은 배트맨이 사람이 아니라 상징이라는, 비긴즈에서 세운 명제다. 「다크 나이트」에서 그는 짓지 않은 죄를 뒤집어썼다. 그 거짓 누명을,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는 폭탄을 안고 만 밖으로 나가 도시를 구하는 진짜 희생으로 갚는다. 그리고 그가 비운 자리를 존 블레이크가 물려받는다. 그의 본명은 로빈이다. 배트맨은 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누구든 짊어질 수 있는 이름이 된다. 상징은 사람처럼 죽지 않기 때문이다.
정작 사람으로 남는 쪽은 조용하다. 알프레드는 언젠가 피렌체의 카페에서 살아 있는 브루스와 눈이 마주치는 꿈을 이야기했었고, 마지막에 그 꿈이 그대로 이뤄진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눈짓만 주고받는다. 「다크 나이트」에서 한 사람을 지키려 진실을 감췄던 그 침묵이, 여기서는 구원으로 바뀐다.
넘어지는 법으로 열린 트릴로지가 다시 일어서는 법으로 닫힌다. 고든은 브루스의 장례에서 『두 도시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을 읽는다.
It is a far, far better thing that I do, than I have ever done;
it is a far, far better rest that I go to, than I have ever know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