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m · 2000 · Mary Harron

American Psycho

아메리칸 사이코

「American Psycho」(2000) 포스터

「으스러지기 쉬운 자폐적 차폐막」

감독
메리 해론
출연
크리스찬 베일 · 자레드 레토 · 윌럼 데포 · 클로이 세비니
감상
2026.09.23

시놉시스만 읽으면 「아메리칸 사이코」는 냉혹한 연쇄살인마 이야기처럼 보인다. 실제로 도끼와 전기톱이 나오고 시체도 쌓이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 가장 또렷하게 남은 건 회의실에서 명함 넉 장을 꺼내 놓는 장면이었다.

월스트리트에서 잘나간다는 화이트칼라 네 명이 가죽 케이스에서 명함을 한 장씩 꺼내 탁자에 밀어 놓는다. 손끝으로 문질러 두께를 재 보고, 서체 이름을 소리 내어 읽는다. 보는 사람 눈에는 넉 장이 다 똑같다. 마지막으로 폴 앨런이 워터마크 박힌 오프화이트 명함을 내민다. 패트릭 베이트먼의 이마에 땀이 맺힌다. 무자비하게 다른 사람들을 살해하는 남자는 명함 한 장에 동요한다.

우습고 쩨쩨한 장면이다. 영화가 왜 이런 장면에 공을 들이는지는 초반에 이미 나온다. 패트릭 베이트먼이라는 관념이 있을 뿐 나라고 할 만한 건 아예 없다고, 그가 제 입으로 말해 버린다. 속이 텅 빈 남자 하나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를 러닝타임 내내 관찰하는 영화다.

껍질

허영은 봐 줄 사람이 있어야 성립하는데, 베이트먼은 욕실에 혼자 있으면서도 제 얼굴을 손보고 그 과정을 소리 내어 해설한다. 얼음팩, 젤, 마스크를 차례로 올리면서 제품 이름과 효능을 읊다가, 같은 목소리로 그 고백까지 이어 간다. 광고 문구와 고백이 한 호흡에 붙어 있다. 마지막에는 굳어 버린 마스크를 턱에서부터 한 껍질 벗겨 낸다.

집을 꾸며 놓은 것도 똑같다. 커튼 대신 내려온 블라인드, 잡동사니 하나 없는 선반, 벽에 걸린 로버트 롱고의 그림. 하필 그 그림 속에서 양복 입은 사람들이 총 맞은 것처럼 몸을 비틀고 있는데, 제 또래가 쓰러지는 장면을 걸어 두고도 그게 무슨 그림인지는 상관하지 않는 것 같다. 갖출 건 다 갖췄는데 그게 뭔지는 모른다. 취향이 있어야 할 자리에 허영이 대신 앉아 있다. 그 자리부터가 제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사실상 회사 주인이니 뭘 해도 된다고, 이블린이 애교처럼 말해 준다.

그 허영을 떠받치는 건 강박이다. 아침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폴 앨런을 부른 밤에도 차례가 정해져 있다. 바닥에 깐 신문지, 챙겨 입은 비옷, 그러고 나서야 잡는 도끼. 죽이기 전에 바닥과 옷부터 지킨다.

허영이 이 정도로 철저해지면 그건 더 이상 꾸밈이 아니다. 꾸밈은 밑에 감출 것이 있어야 꾸밈이다. 이 남자에게 껍질은 덮어 두는 물건이 아니라 가진 것의 전부다.

눈먼 자들의 도시

뼈 · 에그셸 · 페일 님버스 · 오프화이트. 남자들이 저마다 제 명함의 색을 그렇게 부른다. 이름은 넷으로 갈리는데 아무도 그걸 흰색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Vice President라는 직함을 어떤 색과 질감으로 찍었느냐를 두고 으스댄다. 서체 이름까지 따진다. Silian Rail과 Romalian Type. 둘 다 세상에 없는 서체다.

돌시아는 그가 예약하지 못한 가게다. 당일에 예약 전화를 거니, 수화기 너머로 상대의 조소만 들린다. 술에 취한 코트니를 다른 음식점에 데려가면서 돌시아에 왔다고 속이고, 코트니는 그대로 믿는다. 명함만 만지작거리던 사람들만 눈이 먼 것이 아니다. 신경 안정제와 술에 취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서로의 이름조차 제대로 모른다. 폴 앨런은 베이트먼을 마커스 핼버스트램이라 부르며 넥타이를 칭찬하고, 핼버스트램 여자친구의 안부까지 묻는다. 식당에서는 저쪽에 앉은 사람을 하나는 리드 로빈슨이라 하고 하나는 폴 앨런이라 한다. 마지막에 변호사 카른스는 베이트먼을 데이비스라고 부르면서, 정작 그 앞에서 베이트먼은 멍청이라고 흉을 본다. 상대가 누구인지 정확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짐짓 눈을 감고 귀를 닫은 것처럼 대화를 이어 나간다.

계몽

베이트먼은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 가르치듯 말한다. 휘트니 휴스턴의 「The Greatest Love of All」을 두고 자기 보존과 존엄을 노래한 곡이라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에 늦지 않았다는 희망을 준다고 한참을 풀어 놓는다. 좋다는 말은 분명히 하는데, 그 말이 하나같이 어디서 읽어 온 말이다. 노래가 좋아서 외운 게 아니라, 외운 걸 풀어놓는 제 모습이 좋은 것이다. 하필 그 곡의 가사가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게 가장 위대한 사랑이다. 정작 자기 얘기라는 건 모른다.

폴 앨런을 집에 부른 밤에도 강의가 먼저다. 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가 왜 좋은지 설명하는 동안 앨런은 취해서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데, 그는 끝까지 다 말한다. 설명을 마치고 나서 도끼를 든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는 강의가 더 길어진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부터 핵군축, 세계 기아, 여성의 권리까지 훑고 나서 젊은 사람들이 물질만능주의에서 좀 벗어나야 한다는 말로 연설을 맺는다. 하나같이 반대할 사람이 없는 항목들이다. 그 자리의 누구도 듣지 않고 말하는 본인도 안 믿는다. 믿지도 않는 말을 막힘없이 해내는 것이 그에게는 실력이다. 폴 앨런 실종 건으로 킴볼 형사가 찾아왔을 때조차 중요한 전화를 받는 척 수화기를 붙들고 옷 얘기나 한다.

크리스티와 사브리나를 부른 밤에는 가르칠 것이 몸밖에 없다. 두 사람에게 자세를 잡아 주고 시선 둘 데까지 일러 준다. 그러다 거울 쪽으로 눈을 돌려 제 몸에 감탄하고 엄지를 치켜든다. 가르치려면 앞에 모르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이 남자는 그 노릇까지 제가 한다. 뭘 가르치는지는 애초에 중요하지 않다. 음악이든 도덕이든, 아는 척할 수만 있으면 된다.

결벽증

결벽증이라고 하면 보통 더러운 것을 못 견디는 성미를 떠올리는데, 베이트먼의 것은 제 물건에 뭐가 묻었을 때만 작동한다. 피 묻은 시트를 세탁소에 맡기러 가서는 얼룩이 안 빠진다고 주인한테 고함을 지른다. 그 시트에 왜 피가 묻었는지를 걱정하는 기색은 없다. 그에게는 얼룩만 사고다.

얕보던 사람이 묻힐수록 심해진다. 돈을 줄 것처럼 다가가 노숙자 앨에게 꽂는 칼, 진이 스푼을 테이블에 올리려 하니 일그러지는 얼굴. 반응의 크기는 제각각인데 고르는 상대는 한결같다. 세탁소 주인도 앨도 진도 그한테 대들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오염 알레르기는 몸과 물건에서 그치지 않는다. 남과 견주어 제가 아래라는 생각이 스치는 것도 그에게는 뭐가 묻는 일이다. 폴 앨런의 명함 앞에서 땀이 난 것도 그래서다.

딱 한 번, 씻어 낼 수 없는 것이 묻는다. 화장실에서 루이스 캐루더스의 목을 조르는데 루이스는 그 손을 구애로 받아들이고 맞잡는다. 베이트먼은 손을 빼고 달아난다. 사람 죽이는 데 한 번도 망설인 적 없는 남자가 화장실에서 뛰쳐나온다.

허(虛), 공(空)

영화 끝에서 그는 변호사 카른스의 자동응답기에 대고 사람을 스무 명 넘게 죽였다고, 뇌를 먹기도 했다고 털어놓는다. 받는 사람 없는 기계가 그 고백을 혼자 듣는다. 나중에 다시 만난 카른스는 그 얘기를 농담으로 받고, 폴 앨런과 런던에서 저녁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끝까지 그를 데이비스라고 부른다. 살면서 할 수 있는 가장 무거운 고백을 했는데 아무도 곧이듣지 않는다. 거짓말이라고 여기는 사람조차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무슨 말을 꺼내도 대답 없는 메아리로 돌아온다.

그쯤 되면 앞에서 본 장면들도 못 믿게 된다. 현금인출기 화면에 FEED ME A STRAY CAT이 뜨고, 그는 시키는 대로 한다. 계단통 아래로 떨어뜨린 전기톱이 달아나던 여자에게 정확히 꽂힌다. 그 여자는 쓰러지기 전에 복도에서 남의 집 문을 두드렸는데 아무 문도 안 열렸다. 다시 찾아간 폴 앨런의 아파트는 비어 있고, 중개인은 그런 광고를 낸 적 없다며 다시 오지 말라고 한다. 어느 쪽이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영화는 끝내 알려 주지 않는다.

그가 떠벌린 말이 거짓이든 그가 저지른 일이 공상이든, 이 남자가 특별해지지는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들이 다시 모여 앉고, 텔레비전에서는 레이건이 이란 콘트라 사건을 해명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어떻게 저렇게 태연히 거짓말을 하느냐고 묻는다. 겉은 사람 좋아 보이는 노인인데 속은 딴판이라는 말이 오간다. 위선자를 두고 위선자들이 말을 주고받는데, 그게 자기들 얘기라는 걸 아무도 모른다.


쾌감만 노리고 만든 연쇄살인 영화였다면 사람들이 이만큼 오래 붙들고 얘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속으로 못할 짓 한 번 안 해 본 사람이 없는데, 이 영화는 그걸 전부 한쪽으로 몰아 놓고 구경하게 한다. 그렇게 한 괴물의 이야기로 닫아 버리면, 관객이 속으로 굴리는 못되고 잔인한 상상은 그 뒤로 차폐된다.

그런데 영화는 그 차폐막을 끝까지 세워 주지 않는다. 베이트먼은 이 고백이 아무 소용도 없었다고 말한다. 벌조차 저를 비껴갔다고 한다. 누구를 벌하려면 누가 무슨 짓을 했는지부터 가려야 하는데, 아무도 그를 제대로 부르지 못하는 동네에서는 그게 끝내 안 가려진다. 그렇게 다 저지르고도 돌시아 자리 예약을 하지 못했다.